미학 [534033] · MS 2014 · 쪽지

2015-08-05 23: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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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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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밤이에요
바람이 불고 별빛이 내리고 달이 뜨고-

두어 평 조그마한 공간에 텁텁한 나무책상 하나, 헛헛하게 빛나는 하얀 스탠드 아래에서
글을 쓸까, 수학 문제를 풀까 - 아니면 친구와 전화를 할까, 영어 단어를 외울까 
도통 경중이 맞지 않아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어버리고야 마는,
그래서 와르르- 결국에는 책상 앞에 서럽게도 무너지고야 마는,
내가 그리 몹쓸히도 이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스스로의 밤이 얼마 마지않은 수험생의 밤, 되돌이킬 수 없는 수험생의 밤인 까닭인데,
이러한 밤에도 사랑하는 너는 나와 같은지-

바람이 머리를 헝클고 지나가면 별빛은 창가에 머물고 
달은 또한 나무 위에 그러하였다


꾸준히 사유하고 습득하고 성찰하여
이제 어느덧 허리치만큼, 
고작 이 만큼 쌓아놓은 얕은 지식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젊은 피가 조금 더 가치 있는 곳에, 조금 더 고운 모습으로 맺혀 있을 수는 없을까, 
대학도 가지 못한 어린 청춘의 시계는 모름지기 자정이 없어야 하는 법이 아닌가, 
너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싶다가도
그래 어린 나도 이제는 버릇이 생긴 것인가-

바람이 불고 별빛이 내리고 달이 뜨고
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내 핸드폰을 놓은 이부자리를 데우고 있다 보면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어느새 고개를 주억거리고 이윽고 펜을 잡는 나의 모습은
이렇게나 큰 세상 속 작은 손목이 안쓰러워 한숨으로 달력의 11월을 넘기오는 나의 모습은

도무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아마도 네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도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밤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내일의 꿈을 꿀 수 있기를,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오는 아침이면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내 방의 문을 열 수 있기를,
어제의 패배와 오늘의 고통을 분에 넘치도록 보상받는 청춘의 내일이 될 수 있기를,
그러한 수험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람이 불고 별빛이 내리고 달이 뜨고-
밤의 향기가 진해져온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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