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403028] · 쪽지

2014-11-30 21:12:26
조회수 12,455

(장문)어느 재수생의 슬픈 생일

게시글 주소: https://rocket.orbi.kr/0005139194

12월 1일. 내일은 제가 태어난 날입니다.


두 번째 수능을 망친 후에 맞는 생일, 마냥 기쁘지 만은 않네요.

물론 수시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에 수능이 20여일 지난 지금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모 외고를 졸업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외고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저 역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가 지금도 크게 갖고 있는 열등감을 얻게 되었고, 어디선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3학년 때는 수능으로는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수시 올인’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갖춰놓은 비교과에 자신이 있었고, 대학에 저를 어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수능 공부는 사탐을 버리고, 그저 우선선발이었던 언수외 합4 정도 수준을 목표로 공부했지요. 하지만 9월부터 10월 사이에 있는 1차 발표, 면접, 최종 발표 등을 거치면서 제 멘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제가 원하는 학교가 모두 저를 거부했을 때, 저와 함께 등하교 하던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모두 원하는 학교에 당당히 합격했지요.


그러고 저는 제 생애 첫 번째 수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심리적으로 큰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평소 약했던 수학영역을 크게 망치며 재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재수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고민했고, 원하는 학교와 원하는 과를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그리고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였습니다.

평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던 저였고, 우리나라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고 싶은 바람에 교육학과 교수, 그리고 법조인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직업을 갖게 된다면 소득 격차가 곧 교육 격차로 이르러 세대 간 악순환이 반복되는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꼭, 재수를 성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과 아무 걱정 없이 만나는 것이었죠.


교대 옆에 있는 모 학원에 가까스로 들어간 저는, 운이 좋게도 한국사 선택반 중 가장 앞 반에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저의 열등감은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열등감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말 생각이 깊고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과 대학에 가서도 계속 함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지요. 그렇게 3달을 열심히 한 결과, 저는 6월 모의평가에서 이제까지 받아본 적도 없는 점수를 받아보게 됩니다. 물론 6월 모의평가이지만, 제가 감히 서울대를 꿈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6월 모의고사에서 대박을 친 뒤, 2~3주 동안 저는 나태해지게 됩니다. 학원 수업도 대충 듣고, 학원 숙제도 그냥 겨우겨우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다행히도 사설 모의고사에서 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으면서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에 다시 집중하려던 찰나에, 저는 병원에서 믿기 힘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터라 계속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검사 결과 희귀 유전병일 수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7월 둘째 주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일주일동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게 끝인가..” 이런 생각도 수없이 반복되었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치료와 검사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 병이 확진일 가능성은 다행히도 낮다고 하시네요.


모의고사 성적은 반에서 꾸준히 중간보다 약간 위를 유지했고, 이 흐름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제가 원하는 과는 몰라도, 재수 실패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수능이 끝나면 누군가를 편하게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요.


수능 전날까지도 공부가 평소처럼 잘 되었었고,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교시 국어 영역의 충격으로 저는 재수를 시작하면서 받아본 최악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시험이 모두 끝난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며 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1년 동안 고생한 결과물이 이게 다인가..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냥 내 분수를 알고 작년에 대학을 갔어야 했나.. 이런 생각들이요.


결국 전 두 번째 수능을 망쳤습니다.


제 폰에 빗발치는 문자와 전화에 저는 차마 답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마주 대한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두렵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전 그저 입시지옥과 제가 가진 열등감에서 벗어나, 맘 편히 친구, 후배, 선배들을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여명의 빛 · 424336 · 14/11/30 21:13 · MS 2012

    힘내시길.

  • 우유젤리 · 463916 · 14/11/30 21:15 · MS 2013

    힘내요.

  • 유노군 · 305580 · 14/11/30 21:21 · MS 2009

    힘내시길. ㅠㅠ

  • 효율성극대 · 488761 · 14/11/30 21:21 · MS 2014

    미리생일축하드려요~~힘내요~~

  • 샌드위치맨 · 449188 · 14/11/30 21:41 · MS 2013

    저와 나이도, 생일도 같으시네요! 먼저 미리 생일 축하드려요.
    작년 수능 망했던 한 사람으로 그 마음 너무 잘 알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힘내세요.
    제가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주던 글귀 하나 남기고 갈게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만들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 맹자

  • 사서삼경 · 482090 · 14/11/30 22:06

    뜬금없긴하지만 맹자님 존경합니다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이미지나간일을 비난하여 무엇하며
    이미 끝난일을 슬퍼하여 무엇하리 공자선생님 말씀이십니다
    훌훌털고 일어나시길...

  • 9일남은중생 · 529892 · 14/11/30 21:45 · MS 2014

    글 다 읽었습니다
    일단 수능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건강이 우선이죠
    몸부터 건강하시고, 정신건강도 챙기세요

    썩은 씨앗이 아닙니다. 조금 늦게 싹이 돋는 것 뿐이죠
    꽃이 피지 않는다고 식물이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시연꽃은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하물며 글쓰신 분은 사람입니다.
    백년이나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지금 이 벽에 절망하지 않고 꼭 벽을 넘어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주제넘은 것 같기도 하네요 ^,^)

    생일축하해요~

  • 한스 · 521684 · 14/11/30 22:05 · MS 2014

    생일 축하드립니다~힘내시길ㅠㅠ

  • 사람다운 · 458345 · 14/11/30 22:08 · MS 2013

    저도 재수한 입장으로 ;하

    무튼 생일 무지 축하드립니닿

    수시 다같이 붙어서 대학갑시다!

  • 새끼손가락 · 480885 · 14/11/30 23:40 · MS 2013

    우와 저랑 같은나이에 같은날생일이고 똑같이수능망했네요 ㅎㅎ;;...ㅠㅠ..
    힘내요..난 당신이 얼마나 끝없는 열등감속에서 공부에 매진했다는게 공감됩니다..
    수시에서 꼭 좋은보답받길 바랍니다.파이팅!

  • YOUYOUYOU · 477303 · 14/11/30 23:59 · MS 2013

    생일 축하해요

    경험상 시간이 약입디다. 힘내요

  • 평가원해체 · 417283 · 14/12/01 00:14 · MS 2012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불꽃남자정병장 · 536767 · 14/12/01 00:37 · MS 2017

    저랑 생일이 같네요.
    제가 위로에 소질이 없어서 따뜻한 말은 못해드리지만
    적어도 생일만큼은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생일 축하해요.

  • ☆대박훈남☆ · 407777 · 14/12/01 00:42

    축하드려요 저도 기쁘지않은생일을 보내서 (재수학원 개강일) 너무 공감되네요..

  • 다각 · 534694 · 14/12/01 00:46 · MS 2014

    하..이번 국어땜에 피해본 상위권들이 많네요

  • ☆대박훈남☆ · 407777 · 14/12/01 00:48

    저는 국a지만 털림ㅋ 대성 평가원#100 항상 맞고좋아하고있었는뎁 수능은다르네요ㅜㅜㅜ

  • 호랑아 · 502435 · 14/12/03 00:16 · MS 2014

    고2때부터 고정1이어서 전혀 걱정 안하고 정말 하.던.대.로. 했다가 망함

  • 비바 · 372801 · 14/12/01 01:10 · MS 2011

    저랑 생일이 같네요^^ 힘내시고!
    좋은날은 좋은날이니깐요..

  • ♡고대영교16♡ · 497803 · 14/12/01 02:53 · MS 2014

    앞으로 어떻게 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잘 풀릴거에요. 그렇게 되기를 제가 마음속으로 방금 기도했거든요! 물론 저는 이제 겨우 고3이라서 그 마음 이해한다 말은 해도 잘 모르는게 사실이고, 감히 누구를 위로하고 응원할 입장도 아니지만...그래도 잘 되기를 빌어주고싶어요.

  • 채집민 · 465920 · 14/12/01 08:06 · MS 2017

    우리 힘내요 저두 재수했고 ㅎㅎ 교대근처에서요 정말 열심히했구 모의성적도 나쁘지않았었는데 수능 쪽박이예요 멘붕이지만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 Academia · 429804 · 14/12/01 08:50

    생일 축하해요! 말주변이 없어서 덧붙이는 말을 쓰기 힘들지만... 힘내시고, 아직 기회가 있다는 데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WA플 · 480938 · 14/12/01 08:59 · MS 2013

    생일 축하해요. 이또한 지나가리니. .
    살다보니 얻는게있으면 잃는게있고 잃는게있으면 얻는게 있더라구요. 수능과 대입이 인생의끝이 아니니 현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화이팅!!!

  • 패왕색의 패기 · 505036 · 14/12/01 12:06 · MS 2014

    생일축하드립니다ㅎ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기분...이해해요
    하지만 시험이 인간의 모든걸 평가하진 못해요
    분명 더 좋은 순간이 올겁니다
    힘내세요!!

  • 일년동안열심히하자 · 474267 · 14/12/01 12:59 · MS 2013

    생일축하드려요!!비록 결과가 만족하실만큼 안나오셨더라도...전 그만큼 한 노력에 박수쳐드리고싶어요...이제 뭘하시든 다 잘해내실수있으실거라 믿어요!
    수시에서도 좋은 결과 나오길 바래요...!

  • 에픽테토스 · 506167 · 14/12/01 15:08 · MS 2014

    힘내세요..저도 수능전까지 점수도 잘 나왔고 자신있었어요.근데 하필 수능날 잠설침과 구토현상이....덕분에 불국어를 제대로 망쳤네요...요즘은 친구들 만나는게 만나는게 아니네요.. 친구들은 모두 수능끝난지도 오래됬는데 왜이리 비관적이냐고 하지만 수능 망한 사람만이 알 수 있거든요....정말 아무리 즐거워도 마음한구석이 아련하고 답답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른채 ..어둠속을 걷고있는 듯이 하루하루를보내고 있답니다.

  • 뀽이 · 504225 · 14/12/01 19:37 · MS 2019

    힘내요!

  • 파라다이시움 · 516987 · 14/12/01 22:22 · MS 2014

    저도 오늘 생일인데요 생일 축하드리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 렌즈 · 434010 · 14/12/02 01:12 · MS 2017

    주어진 점수 앞에서 '힘내라'라는 응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이시간이 웃어넘길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논술대박기원ㅎㅎ · 534593 · 14/12/02 16:32 · MS 2014

    힘나지 않는 상황에서 힘내라는 말은 때론 도움이 안됐습니다.. 저도 이번에 실패를 경험하고 한동안 그랬죠.. 지금도 수능 확정컷에 등급이 떨어지니 정신이 혼미합니다. 하지만 지금 실패가 평생의 실패는 아니라 생각해요.. 지금 제 말이 님께 크게 와닿지 않을수도 있지만, 시간이 약인게 맞는말 같아요... 우선 몸부터 건강히 잘 챙기시고 토요일날 웃으시길 바랄게요.!

  • loet · 532821 · 14/12/02 22:03 · MS 2014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제가 님보다 나이는 많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입장이라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4번째수능 끝나고 나서야 느낀점 하나 말씀드리자면 인생은 길다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는데는 1년의 수능이라는 짧은 지름길도 있지만 조금 길지만 목표까지는 확실히 이어지는 길도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 힘내시길.....

  • 봄에햇살 · 430032 · 14/12/04 11:51 · MS 2012

    생일 축하드리고 힘내십시요
    저는 삼수생이였던 엄마입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시간이 약이지요
    수시에서 꼭좋은결과 있기를 바라고 정시에 지원하게되면 꼭좋은결과가 있기를 빌겠습니다.
    좋은점수를 받으면 좋겠지만 대학지원이 6교시라는 말이있습니다.끝까지지원잘하시고 힘내십시요.저희 아이떄생각이나서 몇자적어봤습니다. 끝까지 힘내십시요.화이팅!

  • 아이유비 · 481170 · 14/12/05 11:53 · MS 2013

    2년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번에 나름 잘본 3수생입니다. 믿음을 잃지 않고 목표에 정진하시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에 안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 please... · 403028 · 14/12/05 12:29

    다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힘 내겠습니다.

  • 김홑준 · 538877 · 14/12/09 10:57 · MS 2014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tchu tchu tcha · 531688 · 15/06/17 19:54 · MS 2014

    힘내라 ㅅ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