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하는 체교과 [868706]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12-11 01: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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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수험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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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못 보니까
생각치도 못한 대학들이 대단해보이고 마음이 간절해지네요
밤에 고민들도 참 많은데 지난 2주일 간의 일들은 고등학생에겐 너무 과분한 감정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수능 1주 전, 부모님 코로나 확진으로 저 또한 자가격리하며 마음 졸이면서 멘탈 박살나고, 검사 다행히 음성 나와서 진짜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공부를 했지만
그냥 멍하니 걱정들로만 가득 찬 책상 앞 딴생각 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빠르게 집에서 마스크 착용하시고 안방에만 있으셔서 저는 안 걸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확진 되시고 울면서 저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하셨습니다. 몇백일동안 정말 열심히 한 거 다 아는데 한 번에 무너뜨린거 너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꾹 참고 괜찮다고 꼭 붙을거라고 지난 모의고사 성적을 들먹이며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던 제 가면은 너무 아팠습니다.
멘탈이 나갔는데도 거짓말을 치면서까지 껴안은 일종의 부담감과 막연한 책임감은 제 자신을 욕심이라는 곳으로 내몰았나 봅니다.


독서실 모든 짐 정리, 보건소에서 줄서는 검사, 담임 선생님께 계속 울리는 전화, 지역 장학사는 부재중, 공무원의 역학조사, 자가격리자 대상 어플 등등 모든 것들이 낯설고 집중은 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장은 또 별도 시험장에 예비소집일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수능 3일여 남기고 이제야 이해했지만
수능 당일 저를 맞이하는 건
수험표가 없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안정약까지 먹고 버텼으나 수험표가 없어 교문 앞에 5분 정도 서있다보니 A4 사이즈 임시수험표를 발급해주시더군요.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벙벙한 저를 다독이는데 불안감과 약간의 분노를 느꼈습니다.
제가 그렇게 물어보고 확인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나다니 ;

가채점표는 어떡하지
본인 확인 할 때는 이 큰 걸 올려놔야하나
심장은 왜 이렇게 뛰지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닌가
원하는 대학 가서 부모님 행복하게 해드려야지

 그러면서 부모님이 격리 병상으로 가시기 전 애써 웃으며 저에게 닫힌 문틈 사이로 파이팅 하는 것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여러 잡생각이 들었고 예열 지문으로 가져간 시험지를 꺼내며 이제 시험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5자리밖에 없는 낯선 풍경에도 저는 마인드컨트롤 하며 예열 지문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는지 같은 학교 학생들이 지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심지어 그 학교는 공학이라 남녀 서로 돌아다니며 뭔가계속 신경은 쓰이는데 또 밖 복도에서는 접촉하면 안 되니 모든 감독관님들이 방호복을 입고 크게 소리지르면서 어디로 가라고 길을 설명하고 어수선한 이 느낌 모든게 싫었습니다. 그때 정말 매우 예민해졌습니다
그렇게 예열지문을 거의 기억이 의존해서 풀고 호흡법하면서 기다리는데 또 너무 떨렸습니다.


 정말로 너무 떨렸습니다
종도 다르게 올리는 줄 모른 채 깜짝 놀래주고 화작 1번 진짜 5초만에 털었는데 2번이 답이 안 보였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읽어도 안 보이는데 시간은 가고..
에라 문학부터 풀었습니다
정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짓입니다.
연계작품에서 웃으면서 '아 공부한 거 다 나왔네' 하고 슥슥 푸는데 3년동안 학교에서 내신 문제로 나온 사미인곡 한 문제에서 막히더라고요 ㅋㅋ 거기서 '아.. 나 진짜 이 작품 세세히 다 아는데 왜 이러는 거지' 하고 별표 치고 다시 앞으로 와서 화작 2번 풀러가는데 젠장 또 안 보이네요
한참 보다가 식은땀 흘리면서 답 찾고맨탈 나가서 헛웃음 짓다가 문법은 또 왜 이러는 지.. 공부한 의미가 없는 듯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국어가 그냥 터지고 시험은 다 개망했습니다.
얼마나 기운이 빠졌는지 점심 밥을 다 먹고도 배가 고팠습니다 ( 돼지 아니에요 )
'탐구 2과목 다 2등급 아래로, 아니 백분위 90초반 아래로 절대 떨어진 적 없었는데.. 등급이 왜 이러지
수학도 평소보다 못 봤는데 계산 실수했나
체육 쪽 쓴다고 공부 안 한 4등급 나오던 영어가 갑자기 2등급이 나오네'


 짜증났습니다
그냥 가채점하고 드는 생각이 '억울하다' 한 마디 였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해온 만큼 받을 거에요"
수능 끝나고 이것 만큼 죽이고 싶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2시간 씩 독서실에 틀어박혀 남들 놀 때 공부하던 저의 수험생활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수능은 정말 불합리 하면서도 합리적인 모순적인 시험입니다.
결과는 저에게 꿈같은 고통을 안겨줬고
가채점이 틀렸나 짝수홀수를 잘못했나 다시 채점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이런 현실에서 저는 부모님 탓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원망스럽고, 이번 시험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여라가지 이유를 대며 합리화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뭐라도 붙잡으려고 자존심을 지켜가며 모의지원을 하는데 족족 다 상향, 위험
결과는 정말 3년 간 본 모든 시험 중 제일 못봤습니다.
전교 100등으로 들어와 2등까지 했던 제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주며 살아왔지만 결과가 이러니 정말 제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지고 성격도 항상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제가 자가격리도 겹쳐서 그런지 내적이고 생각만 많아졌습니다.
 지금 모든 연락망은 다 스스로 차단한 상태고, 카톡이고 전화고 인간관계는 단절된 채 새벽에 그냥 생각이 많아져서 글을 써내려 갑니다.
그동안 소중한 사람들에게 했던 자신있는 말들과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뤄낸 모습을 결국 못 보인 채로 저는 우울감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에게 맞는 대학들을 합리화를 해가며 타협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성적을 인정하기 힘들었을 뿐이고, 이런 정도의 결과 나오려고 내가 그동안 목표를 세운게 아니란 것을 되새기며 저는 이제 반수 계획도 세우려고 합니다. 남은 기간에는 운전 면허도 미리 따놓고 운동도 빡세게 해서 몸도 좀 만들까합니다 ㅎ
하지만 쌩재수는 너무 두렵습니다.
수능은 인풋에 비레하지 않고, 저에게는 실력 만큼 안 나오는 떨면 그저 끝이라는 생각에 젖어서요.



 어제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고 내일 드디어 자가격리가 해지 되어 학교로 기말고사를 보러갑니다.
각자 만의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저에게 해줄 수 있는 한 마디는 무엇인가요 뭐든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라는 당연하지만 깊게 깨달은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리며 이 의식의 흐름미 철철 넘치는 복잡한 글을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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