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돌리네 [711805] · MS 2016 · 쪽지

2018-01-24 23:17:56
조회수 4,409

열등감에 얽매인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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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주변에서 들었왔던 이야기와는 달리, 나는 평소보다 수능을 더 잘 쳤다. 그 덕에 고3 내내 말로만 외치고 다니던 서울대 공대에 정말 안정적으로 합격했다. 수능이 끝나고 가채점을 했을 때, 가채점 결과로 어디로 갈 수 있는 지를 확인했을 때, 그리고 진짜 성적표가 나오고 합격발표가 나는 순간까지 나는 정말 행복했다. 흔히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세상에서 내가 현역으로 당당하게 원하던 학교에 붙으니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합격발표 이후 2주간은 세상을 다 가진듯 했고, 그 동안 고생했던 것들에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오르비 채팅창에 자랑스럽게 서울대 합격을 말하고, 돌아오는 축하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한 내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남들이 뭘 하던 별로 관심이 없었다. 누가 서울대 의대를 가던, 누가 대통령 상을 받던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고3 때도 남들이 성적이 어떻게 나오는지가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았다. 결국 그건 남이고 나 자신 그렇지 않으니깐. 그런데 내가 '서울대'라는 계급장을 달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 계급의 한명으로 바라보고, 나도 나 자신을 서울대에 얽매기 시작하니 내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높은 대학, 더 높은 학과에 간 사람들을 보니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정작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나 혼자 움츠려 들고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너무나도 싫더라. 이 열등감을 해소하려고 자꾸자꾸 겉으로라도 내가 메디컬 계열에 낀 것처럼 말하게 되었다. '아 나는 의대 포기하고 공대간거야', '나 가서 약대나 준비할까?'라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고, 인터넷에 내 과에 대해 검색해보면서 스스로 '아 그래도 공대중에선 서울대가 최고잖아', '의대는 내가 취업에서 싸울 때 어차피 없잖아'라며 혼자 열심히 자위하고 있었다. 괜히 의대간 애들을 아무 근거없이 비난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 심한건, 내가 점점 '대학 계급'에서 위의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만 얻고 힘드니 점점 아래만 쳐다보며 우월감을 얻으려고 하게 되었다. 지방대나 같은 과중에서 다른 대학들을 생각하며 행복회로만 열심히 돌리게 되었다. 대학에서 만나고 나보다 낮은 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더라. 진짜 지금 돌아보면 이런 인간쓰레기도 쓰레기가 없다. 그렇게 입학하고 열등감에 가득 찬 1년 지난 지금 내가 뭘 이루었나 싶다. 학기 공부 중에도 공대 전문 관련 지식이 나오면 의대애들한테 으스대듯이 잘 알지도 못하는 미분방정식, 라플라스를 씨부려댔다. 이제는 내가 느꼈던 재미들이 그저 자기위안삼으려고 재밌다고 나 자신을 속인건가도 싶다. 그렇다고 열등감만큼 나는 노력도 안했다. 그저그런 학점에 그렇게 비난하던 의대애들보다도 노력을 안했다. 아직까지도 내가 자랑할 거라고는 수능점수와 내가 속한 '계급'의 네임벨류뿐이다. 솔직히 오르비에 계속 들락날락하면서 수능에서 내가 벗어나지를 못했다. 내가 떳떳한게 수능점수 뿐이니 계속 거기에만 얽매였다. 


마무리가 내가봐도 개찝찝하지만 열등감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나 심하면 오르비에서 의대합격글만봐도 약간의 열등감이 생기는 수준이다. 그래서 오르비도 안하고 최대한 학벌에서 신경을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거 읽는 사람은 그래서 어쩌라고 싶겠으나, 한번은 익명성을 이용해서 이런 얘기를 털어놓고 싶더라. 상담선생님이나 부모님, 친구들에게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쪽팔리고 무서워서 비겁하게 인터넷을 이용했다. 사실 아무도 안읽을거같긴 하지만. 이러한 똥글도 올릴 수 있는 오르비에 고맙다. 

혹시나 사회인식적으로 좋은 대학을 갔던, 나쁜 대학을 갔던 나와 같이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무언가 차도책을 찾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도 열등감에 휩싸여서 어떠한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고, 애초에 이 글이 개똥글이라서 들어온 사람들에게조차 미안하다. 일기장에나 적고 혼자 질질짤 이야기이나, 위에서도 말했듯 누군가에게 익명적으로라도  글을 쓰며 털어놓고 싶어 오르비에 희대의 똥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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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카르도 아로마 · 800107 · 18/01/24 23:18 · MS 2018

    세줄요약좀

  • 코오오돈 · 693533 · 18/01/24 23:23 · MS 2016

    의대 안(?)간 설공대생의 열등감에 대한 자기성찰 보고서

  • 노베황 · 755458 · 18/01/24 23:33 · MS 2017

    털어놓으셔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셨길 바라요 입결에 얽매이고 급을 나누는 것에 얽매이면 행복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요 작성자 분이 충분히 그런 생각 가지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보다는 본인에게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